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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슨 웰스의 영화 '시민 케인(Citizen Kane)'은 1941년 개봉 이래 영화 역사상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언론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의 삶과 죽음을 추적하는 이 영화는 서사 구조의 실험, 카메라 기법의 혁신,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라는 세 축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본문에서는 이 작품의 서사적 장치와 시각적 연출, 상징적 결말을 중심으로 분석하며, 왜 이 영화가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화 비평가와 학자들에게 끊임없는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를 고찰한다.
서론: '로즈버드'에서 시작된 영화 예술의 혁신
1941년, 당시 25세의 천재 연출가 오슨 웰스는 첫 장편영화 '시민 케인'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화제를 모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예술적 가치와 영향력은 더욱 높이 평가되었다. 영화는 신문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이 죽으며 남긴 마지막 말, ‘로즈버드(Rosebud)’의 의미를 파헤치는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단 하나의 단어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축이며, 관객은 기자 톰슨의 시선을 따라 케인의 인생을 퍼즐처럼 맞춰나간다. '시민 케인'의 가장 주목할 점은 바로 그 서사 구조의 파격이다. 전통적인 연대기적 흐름을 거부하고, 다양한 인물들의 회상을 통해 케인의 삶을 조각처럼 제시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관객은 어느 한 인물에 의해 완성된 인생이 아닌, 다층적이고 해석 가능한 인물의 초상을 접하게 된다. 이러한 비선형적 서사 구조는 이후 수많은 영화들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도 영화 문법의 혁신 사례로 인용된다. 또한 웰스는 촬영 기법에서도 혁신을 시도하였다. 깊은 초점(Deep Focus) 촬영, 로우 앵글, 세트의 천장을 드러낸 구성 등은 시각적으로 인물의 심리와 권력 구조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화면 속 공간을 입체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이야기의 흐름과 인물 간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본 서론에서는 이러한 배경을 통해 '시민 케인'이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닌, 영화 매체 자체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작품임을 짚어보았다.
본론: 찰스 포스터 케인의 초상과 인간 욕망의 아이러니
찰스 포스터 케인이라는 인물은 실제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논란과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한 인간의 성공과 몰락,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춰진 고독과 결핍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케인은 어린 시절 가족에게서 떨어져 재산과 권력을 상속받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인간적 유대와 감정적 온기를 상실한다. 그는 신문 제국을 건설하고 정치에도 도전하지만, 결국 친구를 잃고, 사랑을 잃고, 남은 인생을 웅장한 저택 '재너두(Xanadu)'에서 홀로 보내게 된다. 영화는 케인의 외적 성공과 내적 공허 사이의 간극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특히 '로즈버드'라는 단어는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자, 그 인생 전체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작용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 타던 눈썰매의 이름으로, 케인이 아직 세상의 간섭과 물질적 가치에 오염되지 않았던 시절을 의미한다. 즉, '로즈버드'는 그가 상실한 순수와 무조건적인 사랑의 상징이며, 관객은 이 단어를 통해 그가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웰스는 다양한 시점의 회상을 통해 케인을 다양한 인물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어떤 이는 그를 이상주의자라 평가하고, 어떤 이는 독재적 인물이라 말한다. 이 같은 구성을 통해 영화는 ‘진실’이란 하나의 절대적 관점이 아닌, 여러 조각들의 총합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결국 인생이라는 복잡한 실체를 하나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본론은 찰스 케인의 인물 구조를 심리학적·사회학적 측면에서 고찰함으로써 영화가 인간의 욕망과 상실을 어떻게 서사화했는지를 분석한다.
결론: '시민 케인'이 남긴 유산과 오늘날의 의미
‘시민 케인’은 단지 기술적 혁신에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수많은 비평가와 감독, 학자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권력, 명예, 성공이라는 외형적 성취를 거머쥔 한 인물이 결국 삶의 끝에서 무엇을 갈망했는지를 보여주는 서사는, 그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유효한 보편성을 지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즉 '로즈버드'가 불에 타는 장면은 상징성과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관객은 마침내 ‘로즈버드’의 정체를 알게 되지만, 정작 영화 속 인물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끝을 맞는다. 이는 진실과 기억, 인간의 내면이 갖는 궁극적인 불투명함을 상징하며, 개인의 진실은 결국 그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오슨 웰스는 '시민 케인'을 통해 젊은 나이에 이미 예술적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는 이 영화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시민 케인’은 단지 하나의 작품에 그치지 않고, 이후 모든 영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시험한 기준점이 되었다. 지금도 영화 제작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 구성, 캐릭터 설정, 미장센, 카메라워크에 대한 깊은 영감을 얻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지속적인 생명력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시민 케인’은 단순히 훌륭한 고전이 아니라, 여전히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할 살아 있는 영화 예술의 교과서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는지를 사유하게 되며, ‘로즈버드’라는 마지막 퍼즐 조각을 통해 우리 자신의 과거와 욕망, 상실을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