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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이디버드 포스터
레이디버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레이디 버드는 많은 이들에게 ‘그 시절’을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단순히 청춘의 한 시절을 그린 성장 영화가 아니라, 모녀 관계라는 가장 복잡하고도 애틋한 감정의 세계를 찬찬히 풀어낸 작품이다. 사춘기 딸을 둔 엄마라면, 이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가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영화는 말로 다 전하지 못했던 사랑과 서운함, 자주 부딪혔던 이유, 그리고 결국 그 모든 감정의 뿌리가 '사랑'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전한다. 이 글은 영화 레이디 버드를 감상한 후 느낀 바를 감성적으로 정리한 블로그 형식의 글이다. 엄마로서, 혹은 딸로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갈등: 사랑하지만 닿지 않는 말들

엄마와 딸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에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 보여주는 모녀 갈등은 극적인 설정도, 인위적인 대사도 없이 너무도 현실적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리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자녀가 있다면, 영화 속 대사가 마치 자신의 일상 대화처럼 느껴질 것이다.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이름조차 스스로 지을 만큼 자기만의 세계가 강한 아이이다. 반면, 엄마 마리온은 현실과 책임 속에서 살아가는 실용적인 인물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표현하는 방식 또한 다르다. 레이디 버드는 자유를 갈망하고, 엄마는 안정과 현실을 강조한다. 이 간극은 대화에서, 행동에서, 결정에서 끊임없이 부딪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레이디 버드가 엄마와 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었다. 대학 진학 문제를 두고 의견이 맞지 않자 엄마는 말없이 차를 돌려버린다. 아무 말 없이 운전석에서 묵묵히 운전하는 엄마의 뒷모습. 그 순간 레이디 버드는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듯 침묵 속에 갇힌다. 우리는 그 장면에서 분노, 실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하지 못한 사랑'을 본다.

이 갈등은 단지 둘 사이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세대 간의 가치관 충돌이자, 여성으로서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쪽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고, 다른 한쪽은 이미 그 과정을 지나온 사람이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 마음을 건너가지 못한다. 사춘기란, 그런 의미에서 참 잔인한 시기다. 부모와 자녀가 가장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멀게 느껴지는 시기. 그 현실을 영화는 너무도 섬세하게 짚어낸다.

성장: 부딪힘 속에서 조금씩 닮아가는 모녀

갈등으로 시작된 모녀의 이야기는 영화가 흐를수록 미묘하게 변한다. 외적인 변화는 거의 없지만,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씩 달라진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갈등을 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 속에서도 어떻게든 사랑하려는 ‘과정’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는 겉으로는 거칠고 당돌하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이다. 특히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보다, 혼자 있을 때 그녀의 진짜 감정이 드러난다. 엄마가 만들어준 옷을 몰래 입고 나간다든지, 엄마가 좋아하는 가게를 함께 가자는 말속에는 작은 화해의 손짓이 담겨 있다. 반대로 엄마 마리온은 일터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집에까지 가져와 딸에게 쏟아낸다. 그녀 역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 괴로워한다. 그저 딸이 행복하길 바라는데, 그 방식이 엇나갈 뿐이다.

한 장면에서는 마리온이 딸의 편지를 발견하고도 일부러 읽지 않는다. 딸이 마음을 담아 쓴 그 편지를 읽어버리면, 더 이상 그 편지를 받지 못할 것 같아서. 그 감정이 너무 잘 이해된다. 엄마라는 존재는 늘 아이를 위해 희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에게서 위로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 씁쓸한 진실이 마리온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드러난다.

시간이 흐르며 둘은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조금씩 닮아가는 것이다. 이는 마치 낯선 길을 걷다가 결국 같은 방향에서 마주치는 것과 같다. 서로 다른 좌표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같은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 레이디 버드와 마리온의 관계는 그런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그 성장의 과정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공감: 내 이야기 같아서 더 아픈 영화

영화 레이디 버드가 유독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는 이유는, 그 이야기 속에 '보통의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일상 속 작은 감정의 균열을 조용히 따라가는 이 영화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만한 순간들을 너무나도 현실감 있게 풀어낸다. 그래서 더 깊고,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 영화를 본다. 어떤 이들은 딸의 입장에서, 또 어떤 이들은 엄마의 입장에서 본다. 그리고 대부분,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어딘가 울컥해진다. 나 역시 그랬다. 레이디 버드가 대학에 합격해 집을 떠나고, 낯선 도시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던 장면에서 나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이 좋아졌어요." 그 말은 단순한 이름의 회복이 아니라, 엄마가 지어준 이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그동안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던 딸이 처음으로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모든 감정은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질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해는 더 깊어지고, 상처는 오래 간다. 영화는 그 사실을 절절히 알려준다. 엄마가 딸을 사랑하지 않아서 갈등이 생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사랑했기에 더 많은 것을 기대했고, 그래서 더 자주 실망했던 것이다. 마치 내 어머니가 그러했고, 나 역시 그러했듯이.

이 영화는 마치 나의 일기를 누군가 스크린 위에 펼쳐놓은 것 같았다. 사춘기 시절, 엄마에게 던졌던 날카로운 말들, 이유 없이 짜증 냈던 기억들, 그리고 이제는 이해되는 엄마의 행동들. 그 모든 감정이,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사춘기 딸을 둔 엄마라면, 그리고 그 딸이었던 모든 이들이 이 영화 속에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레이디 버드가 주는 진짜 감동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단지 청소년의 성장 과정을 담은 영화가 아니다. 그 안에는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모녀 간의 사랑과 오해, 그리고 이해가 담겨 있다. 사춘기 딸을 둔 엄마라면,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겪는 감정의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딸이었던 이들이라면, 이제는 어른이 된 시선으로 과거의 감정을 다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영화를 꼭 한 번 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당신의 삶에도, 작은 화해의 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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